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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위에 여행 포개기

기사승인 2023.04.19  01: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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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밭수목원에서 보낸 하루

▲ 출처:pixabay

훌쩍 떠나고 싶다. 책상 위에 전공 책을 펼쳐놓고 꼬박 졸다 보면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동기나 휴학하고 유럽 여행 중인 선배 소식이 떠오른다. 비행기 표를 검색하느라 핸드폰 스크롤 내리기 바쁜 4월 하굣길. 집으로 걸음을 옮기는 대신 한밭수목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일상에는 매일의 과업이 있고,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으므로 평소엔 착실히 톱니바퀴를 굴리다가 문득 멈추고 싶을 때, 이미 몸에 달라붙은 생활습관이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중간고사가 다가올수록 한쪽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플래너에 공부 계획을 짜고, 캘린더 앱에 오늘의 할 일을 적어두어도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불안하다. 

 

그러나 여행은 일상의 질긴 끈을 끊어낸다. 자질구레한 고민까지 챙기기에 여행 가방은 너무 작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낯선 세계를 구경하기에도 바쁜 나의 하루는 단숨에 '걷고-먹고-자기'의 반복으로 바뀐다. 하루 두 번 커피를 마시고, 세 끼 내내 배부르게 먹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아쉬움을 더해 캔맥주를 따는 게 여행에서 유일한 할 일이다. 길을 잃는다거나 임시 휴업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일은 평소라면 큰 스트레스이지만 여행 중에는 괜찮다. ‘혹시 몰라’ 넉넉히 챙겨온 경비가 전부 바닥날 때까지 펑펑 쓰면서, 수시로 생활비 통장의 잔액을 확인해야 하는 삶을 잠시 잊어본다. 

 

긴 시간을 여행에 할애할 수 없는 학기 중에는 한밭수목원으로 떠나보자. 평일 오전 시간대 처음 방문한 한밭수목원은 주말 오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보다는 조용히 혼자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넓은 부지를 가득 채운 꽃과 나무를 보며 시야가 탁 트인 녹색 잔디 위를 걷고, 실외로 나와 수생식물원 주위를 뱅글뱅글 돌다가 벤치에 앉아서 물고기를 구경한다. 바둑판처럼 죽 늘어선 아파트 단지와 8차선 도로가 전부인 둔산동에서 한밭수목원의 풀과 나무는 존재 자체로 여행이 된다. 하루쯤은 열대 식물원에서 내 키의 서너 배쯤 되는 커다란 야자나무와 바나나나무 밑을 하릴없이 걸은 뒤, 다시 힘을 내어 일상의 트랙 위에 올라타도 괜찮지 않을까.

 

정지우 기자 2207005@pcu.ac.kr

<저작권자 © 배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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