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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시 부문 심사평

기사승인 2022.09.14  13: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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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교수 (기초교육부)

 올해 배재문학상 운문부에 투고된 작품은 총 27편이었다. 투고된 작품 수가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으나,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여전히 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있다는 점은 심사위원으로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다만 투고된 작품의 질적 수준은 아쉬웠다. 많은 작품들이 몇 가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로 습작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문제점을 정리하면 3가지 정도가 되겠다.

 첫 번째는 시의 대상을 지극히 사적으로, 그것도 매우 단순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야 말로 시를 시답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적 대상의 표면적인 의미를 단편적인 감상 수준으로 인식하고 창작한 시는, 절대 독자의 감정이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길 바란다.

 두 번째는 불필요한 표현과 이미지를 막연하게 나열하고 있는 작품이 많았다. 시의 주제의식과 상관없는 시어를 고민 없이 사용하고 있는 점, 어디서 들어봄직한 상투적인 표현을 가감 없이 나열하고 있는 점은 특히 아쉬웠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못하고 노출되는 감정의 과잉 역시 문제 요소였다. 시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서정은 객관화되어 적확한 언어로 노래될 때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한계는 시의 상징성과 애매성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투고된 작품 중에 산문에 가까운 글을 써놓고, 문장의 어순을 바꾸거나, 행을 나누거나 하는 식으로 운율을 보태 창작한 시가 다수 보였는데, 이는 최근에 유행하는 SNS 짧은 글귀를 시로 오해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작품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직관적 의미가 강점처럼 보이지만, 깊이 있는 성찰은 담고 있지 못해 오히려 공허했다. 시란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독자가 다양하게 읽어내고 이해할 때 풍성해진다. 시를 쓰는 이들도 마땅히 그리 써야 할 것이다.

 이번에 입상한 작품들은 앞의 지적한 문제점을 비껴간 경우이다. 김다희(건축학과・4)의 「실증」은 언어를 잃어버린 존재의 죽음을 밀도 있게 이미지화하고 있다. 능수능란한 언어의 구사를 통해 죽음의 공간을 그려내고, 인간의 실존이라는 주제의식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어 단연 돋보였다. 하지만 그 외 작품은 모호한 관념을 상투적 언어 표현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아쉽다. 투고된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면 무리 없이 당선작으로 추천하였을 것이다. 이미지 보다는 그 속에 투사된 의미를 다듬는 연습을 한다면 더욱 좋은 시작(時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송유정(아트앤웹툰학과・2)의 「악보」는 악보를 바탕으로 한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적 표현이 단연 돋보였다. 특히 불협화음, 박자, 도돌이표, 8분음표 등의 용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주제의식을 성공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작품 내 화자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은 시의 상상력의 폭을 제한하고 있어 아쉬웠다. 해당 부분을 걷어내고, 악보의 모습에 삶의 모습을 객관화해 담아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이학준(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1)의 작품은 언어를 제련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특히 「편지1」은 은유적 감각을 바탕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화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강점이었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에서 급하게 주제를 드러내며 시의 밀도가 떨어지고 있어 아쉬웠다. 또한 연작으로 쓴 「편지2」와 「편지3」 역시 비슷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세 작품 중 김다희의 「실증」을 가작으로, 송유정의 「악보」와 이학준의 「편지1」을 입선으로 추천한다. 최종 수상작을 결정할 때 특히 염두에 둔 것은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참신한 시적 감수성, 시에 대한 진실성 등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를 쓰는 이의 재목을 가름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수상한 학생들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수상작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온 몸으로 시를 써내려갔을 학생들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한다. 말라르메의 말처럼 시는 ‘백지의 공포에 온 몸으로 전율하며 각고정진하는 자에게만 황홀한 빛을 던진다.’ 모두 황홀한 어느 날을 마주할 수 있길 응원한다. 

배재신문 pcnews@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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